70년만에 돌아온 프로 리그, 이 기자가 목격한 '여자야구'의 매력
  • 등록일 : 20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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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정 기자와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선수들 ⓒ 황혜정


오는 2026년 미국에서 70년 만에 다시 '여자야구 프로리그'(WPBL)가 출범하는 가운데, 국내 선수 3명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일본 실업팀 출신 투수 김라경, 포수 김현아, 대표팀 4번 타자 박주아 선수는 현재 최종 트라이아웃(공개 선발 테스트)을 통과하고 10월 드래프트(구단 지명)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24년 9월에는 국내 최초로 국민대에서 엘리트 여자 대학야구부가 창단되기도 했다.

2025년 올해 KBO 프로야구는 처음으로 단일 시즌 12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한국에서 야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대중적인 인기 스포츠다. 하지만 '여자 프로야구'에게 한국은 여전히 '불모지'다. 3명의 한국 선수가 미국 여자야구 무대로 뛰어드는 이 순간이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이유다.

지난 3년 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국 여자야구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여자야구의 매력을 알리려 노력한 기자가 있다. "여자야구는 '선수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열악한 여건 속에 묵묵히 성장해온,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고 말하는 <스포츠춘추>의 황혜정 기자를 지난 9월 20일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 했다.

"스포츠는 단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무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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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에서 여자 야구를 취재하는 황혜정 기자 ⓒ 황혜정


- 여자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2002년 '한일 월드컵 키즈'로 자라며 박지성 선수를 보며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를 매우 좋아했고, 매일 새벽이면 남자 축구 대표팀 A매치를 보기 위해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여자 축구의 존재는 알지 못했다. 축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여자 축구 대표팀이나 관련 팀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010년에 여자 축구를 처음 알게 됐다. 당시 지소연 선수를 필두로 한 U-20 여자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세계 3위를 차지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어서 U-17 여자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당시 결승전을 끝까지 지켜봤고, 3-3 동점과 승부차기까지 이어진 경기는 환희와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순간부터 여자 축구에 꾸준히 관심을 갖게 됐다.

시간이 흐른 후 스포츠 기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축구를 좋아한다는 점을 어필하며 축구팀 배치를 희망했지만, 인력이 부족하던 야구팀에 발령을 받았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야구 현장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취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시작했다. 야구팀 신입 기자로 근무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문득 '여자야구는 없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검색을 해보니 몇 년 전의 기사만 보였고, 여자야구 대표팀이 사회인 동호인 체제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직접 여자야구를 취재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한국여자야구연맹에 전화를 걸었다. 연맹에서도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다소 경계하는 분위기였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니 여자야구만의 독특한 에너지와 활기에 놀랐고 점점 빠져들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여자야구 취재가 벌써 3년을 넘겼다. 여자축구를 처음 알게 된 계기가 세계 대회에서의 선전이었던 것처럼, 여자야구도 미디어가 꾸준히 조명한다면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여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여자야구를 취재하고 있다."

- 여자야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여자야구 선수들에게 국가대표팀은 단순한 팀이 아니라, 야구를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간절히 바라던 기회다. 누구에게나 국가대표라는 자리는 소중하겠지만, 여자야구 선수들에게 대표팀은 유일하게 체계적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곳이다. 선수들은 입을 모아 '대표팀에서만 밀도 있게 훈련할 수 있다'고 말한다.

평일에는 학교나 직장에서 각자의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주말이면 쉬지 않고 운동장에 모여 합숙 훈련을 받는다. 1세대 여자야구 국가대표 출신이자 당시 대표팀 트레이너였던 방순진 씨는 '벚꽃 축제가 한창인 3월에도 선수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대표팀 소집에 참석한다. 벚꽃보다 야구가 더 좋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수들은 배움에 목말라 사비를 들여 레슨을 받거나 동영상과 서적을 탐독하며 야구를 익히고 있다.

투수 최송희 선수는 야구공을 마음껏 던지고 싶어 레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외야수 안수지 선수는 처음에는 10m도 채 던지지 못했지만 8년간의 노력 끝에 서른이 넘어 국가대표가 되었다. 포수 김해리 선수는 웬만한 야구 기자들보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더 잘 알 정도로 해외 야구까지 챙겨보는 선수다. 이처럼 '야알못'에서 국가대표가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서 취재하며, 야구뿐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 여자야구의 이야기가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이 안 된다'는 논리가 늘 지배적인 것이 현실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243건의 여자야구 기사를 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돈이 안 되는데 왜 취재하냐'였다. 여자 프로 리그가 없다 보니 스타 선수가 드러날 기회가 없었고, 볼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이유로 '재미없다'는 편견도 작용했다. 그 결과 미디어에서도 조명을 꺼렸다.

그러나 직접 본 여자야구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국가대표 에이스 김라경 선수의 커브는 예술 작품 같았고, 구속이 상대적으로 느린 덕분에 오히려 궤적이 더 뚜렷하게 보였다. 투수 박민성 선수는 스리쿼터 자세로 던지는 직구가 뱀처럼 휘어 들어오며 환상적이었다. 외야수 안수지 선수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중견수 신누리 선수의 다이빙 캐치, 유격수 박주아 선수의 몸을 날린 호수비, 포수 김현아 선수의 호쾌한 장타는 모두 직접 봐야만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의 수석코치였던 정근우 전 SK 선수 역시 '여자 야구의 존재조차 몰랐는데 직접 보니 가능성이 충분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투수코치를 맡았던 윤길현 전 SK 선수도 '여자야구, 정말 매력 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자 선수들의 경기를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단 한 번도 그들의 플레이를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야구라는 종목 자체가 원래 '힘'보다 '지능형 스포츠'를 표방하며 탄생했다. 그런 점에서 세밀한 플레이와 협업을 강조하는 여자 야구가 단순히 구속이 느리다는 이유로 저평가되는 것은 모순이다. 같은 논리라면 MLB보다 KBO가 덜 재미있어야 하지만, 실제로 KBO는 관중 점유율에서 MLB를 앞서고 있다. 이는 스포츠의 매력과 흥행이 단순히 구속이나 힘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자 배구의 사례도 비슷하다. 흥행하기 전까지는 늘 '스파이크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인기를 얻은 뒤에는 '유연한 볼 전개가 장점'이라는 평가가 붙게 되었다. 결국 선수들의 기량이 바뀐 것이 아니라, 보는 시선이 달라지면서 평가가 달라진 것이다. 여자 야구 역시 충분히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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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에서 여자 야구를 취재하는 황혜정 기자 ⓒ 황혜정



- 여자야구를 취재하고 기사를 쓸 때 특별히 유의하는 점이 있다면?

"여자야구를 취재할 때, 무엇보다 선수들의 진심 어린 열정과 노력,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유한 가치들을 최대한 온전히 담아내고자 했다. 단순히 경기 결과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이 왜 야구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어떤 여정을 거쳐 국가대표에 올랐는지를 세밀하게 조명하려고 노력해왔다.

특히 여자야구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선입견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유의해왔다. 여자야구가 남자 야구보다 볼의 속도나 힘의 차이가 있다는 점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지만, 이를 굳이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발견되는 세밀한 플레이, 팀워크, 집중력과 같은 고유한 매력에 집중해왔다. 직접 현장에서 마주한 경기의 박진감과 선수들의 표정, 땀,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여자야구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동안 기사 작성의 방식이었다.

게다가, 여자야구는 아직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진정성 있는 시선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선수들은 학교나 직장을 병행하면서도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모여 훈련을 받고, 사비를 들여 레슨을 받으며 기량을 갈고닦고 있다. 그들의 야구를 향한 애정은 단순한 취미 이상의 것이며, 그 열정을 담아내는 일은 기자로서의 사명과도 같다고 느껴왔다.

그동안 여자야구를 취재하며, 스포츠가 단순히 승패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과 열정, 성장의 드라마가 담긴 장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됐다. 앞으로도 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여자야구가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꾸준히 기사를 써나갈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공민영 대학생기자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대학생기자가 취재한 것으로, 스쿨 뉴스플랫폼 한림미디어랩 The H에도 게재됩니다. (www.hallymmedialab.com)


#여자야구#인터뷰